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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는 진해현관아 및 관사유지(鎭海縣官衙-官舍遺址:경남유형문화재 244), 고현리(古縣里) 공룡발자국화석(경남기념물 105), 마산 가을포봉수대(馬山加乙浦烽燧臺:경남기념물 169), 제말장군(諸沫將軍)의 묘(경남문화재자료 226), 창원객사(昌原客舍), 창원동헌, 진동리(鎭東里) 고인돌군, 고현리 석불좌상, 봉래정(蓬萊亭), 사동리(社洞里) 성터, 삼진 3·1의거탑(三鎭三一義擧塔), 성내리(城內里) 고인돌군 등이 있다.

마산 향교[馬山鄕校]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校洞里)에 있는 조선시대 향교.

마산시 진동면 교동리 교동마을 입구에 있다. 1414년(태종 14) 진해현이 설치되면서 진해향교로서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방화로 소실되었다. 이후 인조 때 재건하였으나 1920년 일제의 강압으로 철폐되었고, 다시 1993년에 창원군향교로 재건되어 1995년 마산향교로 개칭하였다.

입구의 외삼문(外三門)은 맞배지붕을 올린 솟을삼문이며, 학문을 강의하는 명륜당은 정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이곳에서는 공자의 제사를 지낸다. 향교의 바깥에는 하마비(下馬碑)와 1990년에 세워진 신위매안비(神位埋安碑)가 있다.

사동 사동리 성지[馬山社洞里城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社洞里)에 있는 조선시대 토성.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社洞里) 사동마을의 낮은 산기슭을 따라 형성된 토성(土城)이다. 마을 동쪽의 구릉에서 시작하여 마을의 뒷부분을 감싸고 서쪽의 구릉으로 연결되어 있다. 토성의 평면은 주머니 형으로 입구는 좁고 둘러싸고 있는 내부는 넓은 모습이다. 성의 500m 앞쪽으로 바다가 있는 것을 보아 바다를 통해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축조연대는 조선시대이다.

마산 진해현 성지[馬山鎭海縣城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鎭東里)에 있는 조선시대 석축성.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鎭東里) 241-1번지 일대로 진동면사무소와 삼진중학교 일부를 포함한다. 조선시대 읍성인 진해현성(鎭海縣城)이 있던 자리라고 전한다. 정사각형 모양의 석축성으로 직경은 300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길이 약 800m, 너비 4.5m, 높이 3m 정도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적대(敵臺:망루)와 여장(女墻:성위에 낮게 쌓은 담), 그리고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중의 성벽을 에워싼 옹성 등을 갖추었음을 알수 있으나, 현재는 대부분의 시설물들이 훼손되었다.

마산 교동리 고분[馬山校洞里古墳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校洞里)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 779번지 일대에 2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1호 고분은 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돌방의 크기는 길이 250cm, 너비 165cm 정도이다. 돌방 내부 바닥의 한쪽에 작은 돌을 깔아 시신을 놓는 시상(屍床)을 마련하였다. 굽다리 긴목항아리 2점과 손칼2점이 발견되었다.

2호 고분은 구덩이식 돌덧널무덤으로 돌방은 대부분 파괴되어 일부가 남아있다. 남아 있는 돌방의 크기는 길이 230cm이고 너비 68cm 정도이다. 바닥이 납작한 항아리 조각 1점이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로 보아 2기 모두 삼국시대 후반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마산 팔의사 창의탑[馬山八義士彰義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社洞里)에 있는 현충시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 사동교 옆에 있는 팔각형 모양의 탑으로 3·1운동 당시 삼진의거(三鎭義擧)에서 숨진 8의사를 기리기 위해 1963년 10월 건립되었다.

삼진의거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 진동면(鎭東面) 3개면이 연합하여 일으킨 만세운동으로, 현재 탑이 있는 자리는 8의사가 일본헌병의 총에 맞아 숨진 곳이다. 김수동(金水東)·변갑섭(卞甲燮)·변상복(卞相福)·김영환(金永煥)·고묘주(高昴柱)·이기봉(李基鳳)·김호현(金浩鉉)·홍두익(洪斗益) 등 8명이다.

마산 진동리 유물산포지[馬山鎭東里遺物散布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鎭東里)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鎭東里) 701번지 일대이다. 진동 운전면허시험장 공사 도중 돌덧널무덤이 파괴되면서 고조선식 동검 1점, 간돌칼 1점, 간화살촉 2점, 붉은간그룻 조각 등이 채집되었다. 본래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있던 자리였으나, 덮개돌이 사라지고 고인돌의 하부구조에 있던 부장물이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조선식 동검은 전체 길이 32.8cm, 슴베 길이 2.7cm이다. 칼몸은 칼끝에서 2/5 지점까지 서서히 펼쳐지다가 꺾이어 손잡이 윗부분까지 거의 평행하게 내려온다. 슴베의 끝에는 오목한 홈이 있다. 간돌칼은 몸체와 자루가 일체형인 유병식(有柄式)으로 그 중에 칼자루에 홈을 판 이단병식(二段柄式)이다. 칼몸의 가운데에는 칼끝에서 손잡이까지 홈을 팠으며, 자른 면은 납작한 마름모꼴이다. 간화살촉은 촉끝의 일부가 없어졌으나 긴 세모꼴로 추정된다. 유물은 모두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마산 고현리 지석묘[馬山古縣里支石墓]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古縣里)에 있는 시대미상의 고인돌.

진동면 고현리(古縣里) 공룡발자국 화석지(경상남도 기념물 105호)에서 북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구릉의 정상부에 있다. 커다란 덮개돌 밑에 작은 돌이 받쳐진 기반식 고인돌로 덮개돌만 노출되어 있어 하부 구조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덮개돌은 퇴적암류의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길이는 3m정도이다. 덮개돌의 윗면은 흙이 덮여 있어 성혈을 찾기 어려우며, 고인돌과 관련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시대를 추정하기 어렵다.

마산 고현리 석불좌상[馬山古縣里石佛坐像]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古縣里)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상.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古縣里) 우산초등학교 정문 옆에 있는 석조 불상으로 고현리 유물산포지에서 발견되어 옮겨졌다. 좌대는 따로 없으며, 불상의 오른팔과 왼쪽 어깨의 윗부분, 그리고 뒷부분이 훼손되어 있다. 법의(法衣)는 편단우견(偏袒右肩;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냄)으로 표현되었으며,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마산 인곡성지[馬山仁谷城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인곡리(仁谷里)에 있는 원삼국시대 테뫼식 산성.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인곡리 산 1번지 일대로 마을의 동쪽 구릉(해발 250m)에 있는 석축산성이다. 구릉의 정상부를 타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서쪽 성벽은 자연 지형인 절벽을 이용하였다. 자연돌을 적당한 크기로 깬돌을 5~8단 정도로 쌓았으며, 성벽의 높이는 1.5~2.0m이고 남아있는 성벽의 길이는 230m 정도이다. 산성의 동쪽에 성문이 있던 자리가 남아있다.

마산시 현동에 있는 당마산성과 축성 형태와 입지조건이 유사해 같은 원삼국시대 산성으로 추정된다.

의창진동리유적[義昌鎭東里遺蹟]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면 진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분묘 유적.

1980년에 경상남도가 실시한 자동차면허시험장 건설을 위한 축대공사 중 현지표 하 150㎝ 지점에서 석관(石棺)이 확인된 뒤 수습형식의 조사가 실시되었다. 내부 석관이 이미 파괴되고 석관 주위의 괴석(塊石)과 석관 하부의 형태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수습조사가 실시되었다. 따라서 정확한 유구의 성격을 파악할 수 없었고 윤곽만 확인되었을 뿐이다.

유구는 현지표 하 150㎝ 지점에서 시작되는 생토면을 50㎝ 정도 파고, 길이 182.2㎝, 너비 56.5㎝ 크기의 석관을 설치하고, 그 주위에 괴석으로 된 석곽을 머리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돌렸다.

석관 내에는 일단병식 마제석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 요령식 동검 1점과 머리가 놓였던 곳으로 보이는 지점에 붉은간토기를 부장하였다. 그 위에는 돌과 흙으로 1m 정도를 덮어 당시 지표면에 맞추어 평탄하게 하였다. 이것은 석관 위에 상석을 올리기 위한 보강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혼토층 사이에서 꼬다리가 달린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지상에서는 어떤 봉분의 표지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는 단순한 석관묘라기보다는 상석(上石)이 제거된 남방식 고인돌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 지역이 원래 ‘칠성뜰’이라 불리던 곳으로, 주변에서 고인돌과 고인돌의 상석이 확인되고 있으며, 또 이처럼 석관 밖에 석곽을 두르고 관 외부에 토기를 부장하는 형태의 고인돌이 밀양군 남전리에서 확인된 데에 기인한다.

유적의 연대는 마제석검이 일단병식이고, 출토된 토기의 형태가 창원 외동, 김해 회현리 출토품과 유사하며, 또 요령식 동검이 변형된 양식을 보이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서기전 4세기 전후로 추정되고 있으나 단안을 내리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마산 다구리 마제석검 출토지[馬山多求里磨製石劍出土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多求里)에 있는 청동기시대 마제석검(간돌칼) 출토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多求里) 141번지에서 간돌칼 1점이 수습되었다. 몸체와 자루가 일체형인 유병식(有柄式)으로 그 중에서 칼자루에 홈을 판 이단병식(二段柄式)이다. 칼몸의 가운데에는 칼끝에서 손잡이까지 홈을 팠으며, 자른 면은 납작한 마름모꼴이다. 손잡이는 가운데에 단이 져 2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체 길이 45cm, 칼몸 길이 31.8cm, 너비 5.8cm, 손잡이 길이 13.2cm이다.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마산 고현리 유물산포지[馬山古縣里遺物散布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古縣里)에 있는 통일신라~고려시대 유물산포지. 진동면 고현리(古縣里) 공룡발자국 화석지(경상남도 기념물 105호)에서 북동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통일신라말~고려초에 걸친 각종 토기와 자기 조각을 비롯하여 기왓조각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과 주변 지형 등을 미루어 집자리 등 생활 유적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마산 송도 마제석검 출토지[馬山-磨製石劍出土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古縣里)에 있는 청동기시대 마제석검(간돌칼) 출토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古縣里) 송도마을 앞마다에서 간돌칼 1점이 수습되었다. 몸체와 자루가 일체형인 유병식(有柄式)으로 그 중에 칼자루에 홈을 판 이단병식(二段柄式)이다. 전체 길이 40.5cm, 칼몸 길이 30.3cm, 너비 6.2cm, 손잡이 길이 10.2cm이다.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마산가을포봉수대[馬山─浦烽燧臺]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있는 봉수대.

경상남도기념물 제169호. 가을포 봉수대는 진동면 광암마을 뒷산 7부 능선(125m)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지름 13m, 높이 2∼3m의 자연석축 담장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그 내부에는 화덕 1기가 복원(1986년)되어 있으나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진해읍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인접한 고성 우산·곡산봉수에 상응되어 함안파산봉수, 의령가악산봉수에 연결되는 간봉(間烽)이다. 봉수제도는 고려 의종 3년에 서북병마사 조진약(曺晉若)의 주청에 의하여 처음 시작되었고, 세종 원년(1419)에는 봉수령을 제정 군사제도로 정착되었다.

봉화방법은 밤에는 불로, 낮에는 연기로 하였으며, 신호체계는 아무일이 없을 때에는 1거(炬),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2거, 해안에 가까이 오면 3거, 우리 병선과 접전하면 4거, 육지에 상륙하면 5거로 하였다. 이러한 신호는 즉각 오장이 각 지방 수령에게 보고하였고, 서울에서는 병조에서 관장하여 승정원에 보고, 임금께 상주되었다.

창원고현리공룡발자국화석[昌原古縣里恐龍─化石]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에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

경상남도 기념물 제105호. 선진 조선소 노두에서 현지 주민에 의하여 발견된 것이다. 너비 3m, 길이 10m의 노두에서 발견되었는데 조각류와 용각류의 발자국이 수십 개가 나란히 보이며, 수각류의 발자국도 함께 보인다. 이 화석들은 조각류와 용각류 공룡들이 육식 공룡인 수각류 공룡에 쫓기어 달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부근에는 이들 외에도 보다 바다쪽 인근에는 10여 마리의 조각류 공룡들이 함께 이동한 발자국들이 나란하게 발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평상시에는 바닷물에 잠겨 볼 수 없다. 그리고 몇 개의 층준에서는 김봉균의 진동새발자국이 발견되며, 연흔과 건열 등의 퇴적구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진해현관아및관사유지[鎭海縣官衙─官舍遺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에 있는 조선후기의 관아건축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4호. 이 건물은 1832년(순조 32) 형방소(刑房所)·사령청(司令廳)·삼문(三門)·객사(客舍)·마방(馬房) 등의 부속건물과 함께 진해현 관아로 건립된 것이다.

그 뒤 이 건물군 안에 진동면사무소가 들어서고 객사는 중학교 교사로 사용되었다. 1985년 객사는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 터에 기단과 초석만 남아 있다. 현존 건물들이 각각 다른 구역에 나뉘어 위치하고 있어 건립 당시의 관아 배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현재의 건물배치를 생각할 때 동헌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군령(軍令)을 출납하는 사령청이, 좌측에는 손님을 맞이하던 객사가, 동헌 앞으로는 말을 사육하던 마방과 지방의 형사를 관할하던 형방소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진해현 관아는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좋은 예이다. 당시 관아의 중심 건물인 동헌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一자형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1칸 규모의 온돌방을 둔 평면 형태이다.

그러나 마루 중 일부에 네모기둥을 두었고 두 개의 목재를 포개어 대들보로 사용한 점, 창호의 형태가 고식을 갖추지 않은 점, 기둥선이 일치하지 않는 등 보수나 개축시에 많은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해현 관아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관아건축 중에서도 동헌 및 부속건물의 대부분을 갖추고 있는 드문 예로서, 관아의 배치법이나 건물형식, 건물의 기능 등을 고찰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의창성문리지석묘[義昌城門里支石墓]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면 성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군.

이 유적은 1950년 박경원(朴敬源)에 의해 그 소재가 밝혀진 곳으로 속칭 ‘팔바위[八巖]’로 알려진 곳이다. 그 중 삼진중학교 운동장 가운데 있던 1기가 1956년에 조사되었다. 혈암질(頁岩質)의 상석(上石)은 표면과 저면(底面)이 평탄하고 장축 2.85m, 단축 1.9m, 높이 0.8m에 달하는 거대한 암괴였다.

지하 묘실(墓室)로 추측되는 상형석관(箱形石棺) 상석에서 동쪽으로 약 1m 가량 떨어진 거리의 지하 75㎝의 위치에서 개석(蓋石)이 발견되었는데, 대략 동서방향이었다. 조사 당시는 이미 상석을 매몰하기 위해 그 지면을 교란시켰기 때문에 상석의 현 위치가 원위치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지석(支石)의 유무, 기타 상태 등은 알 수 없었다. 석관은 두께 3㎝ 내외의 점판암(粘板岩)으로 만든 평판암 6매로 구성되었다.

1매의 상석(床石)에 4매의 측판암(側板岩)을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 넓은 뚜껑을 덮었으며, 뚜껑 위에는 측판암을 방형으로 떼어낸 작은 판석편을 여러 조각 합쳐서 두 겹으로 덮었다. 규모는 채굴 전에 계측한 바에 의하면 내부 길이 175㎝, 너비 42㎝ 가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관의 저면에는 두께 2㎝ 가량의 세토(細土)가 침전되어 있었는데, 석검 1점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석관이 발견된 부근의 흙 속에서는 홍도(紅陶)의 파편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또한 석관의 주위와 저면의 땅 속에는 지름 5㎝ 내외의 역석(礫石)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것이 석관에 따른 적석(積石)인지 아니면 자연석으로서 혼입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형편이다.